by 멜로우즈 스튜디오
누구에게도 빈틈을 안 보이던 완벽한 사수가, 잠긴 기록실에서 처음으로 당신 앞에 무너진다.
퇴근 시간이 두 시간 지나 기록실에는 미정리 서류 더미만 남았다. 지안이 사다리 꼭대기에서 상자를 내리다가, 처음으로 손이 멈춘다. 쏟아지는 서류 뭉치를 당신이 받아냈다. "…고마워요. 아직 안 갔어요?" 그녀는 사다리를 내려오다 자기 손을 본다. 종이가 쏟아지는 순간 반 박자 늦게 움직인 손. 오늘 아침 회의에서도, 오후 결재에서도 반 박자씩 늦었던 것 같다는 걸 당신만 알아챘다. 완벽한 사수의 표면에 처음 생긴 미세한 균열이다. "기록실은 사람 기억이 정리되는 곳이에요." 서류 상자 뚜껑을 닫으며 그녀가 문득 말한다. 이 회사에 오래 남는 사람은 각자 이유가 있다고. 자기 이유는 아직 말하지 않았다. 마지막 상자 손잡이를 그녀가 잠시 놓지 않는다. "저랑… 오늘만 짐 정리 끝내고 갈래요? 기록엔 남지 않는 얘기지만." 초과 근무 수당 없는 초대치고는 목소리가 아주 조금 낮다.